마음의 소리

기계적 본능이 지배하는 '나'를 보다

返初 2015. 1. 24. 10:08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동안 '나'라는 사람의 본능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왔다. 이제까지 26년동안은 그 본능이 나인줄 알았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 본능을 바꾸기 위해 책을 봤다. 고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나의 실질적 본질은 바뀌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틀전 밤 '나'는 누워있으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가슴이 답답하고 잠도 오지 않았다.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곰곰히 들여다보자.

 나는 좋게 말하면 배려지능이 아주 뛰어나고 나쁘게 보면 참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우 두려워 하는 시선의 노예이다. 내가 약자라서 그런지 다른 사람의 기분을 파악하고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도가 텄다. 그래서 일까..

 

 

 P형과 나는 그날 하루종일 같이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팟캐스트에 듣는데 나는 온 집중을 다했다. 그런데 밤에 갑자기 K가 들어왔다. 그리고 난 집중을 바로 거두고 그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느꼈다. 'P형이 실망하지 않을까?', 'K 하고만 친하다는 것을 너무 과시 하는 것이 아닐까?', 'P형이 3자관계에서 고립되었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순간적으로 나는 P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P형은 기분이 안 좋아보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P형이 밤에 자기전 화장실을 갈 때 욕하는 소리를 듣고 불안에 빠졌다. 그 욕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이렇듯 나는 철저히 '약자'다. 제대로된 '소통'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배려'라는 가면을 쓴 본능적 힘이 '나'라는 존재가 혹시나 부정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기계적 소통을 하고 있었다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즉 '나'는 내가 아니고 '나'라는 조작된 본능에 의해 기계적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본다. 특히 2012년이나 13년이나 작년도 그렇고 그 때 사귄 많은 사람들이 난 기계적 관계라고 본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가진 인정욕구의 본능이 강할 때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 진실한 소통이되는 진정한 친구일 것이라 믿었고 또 거기에 대해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성찰하고 있는 이러한 측면들을 어렴풋이 느끼기만 했지 이렇게 상세히 잡지는 못했었다. 부산에 갔다와서 혼란스럽고 심란한 마음이 들었고 본디 가지고 있던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게 되면서 나는 결국 무정부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난 계속되는 의구심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지 지켜보았고 또 왜 그랬는지 돌아보게 되면서 이런 장문의 글을 쓰고있다. 내가 최진석 선생님의 노자를 만난 것이나 벙커1의 정진스님을 만난 것이나 장자책과 도덕경 책을 본다는 것이나 결국 순수한 나의 선의지의 간절함이 존재에 대한 의문과 진실된 자신을 만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선생님을 만날 수 있게 한 것 같다.

 이런식으로 앞으로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습관화되고 기계화된 '나'라는 존재의 고착된 반응을 계속해서 지켜보면서 하나 하나씩 알아 가야겠다.

 인위의 굴레속에 허덕이는 내가 '虛'해지는 그날을 염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