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식과 평정심
아프고 난 후 부터 갑자기 욕구가 전체적으로 줄었다. 순수하게 몸의 아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단정지을 수 없다. 외려 정신과 더 관련이 깊은 듯 하기도 하다.
지금의 나의 상태는 감히 말해 평정상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마음이 고요하다.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구도 없고 성욕도 없다. 식욕도 떨어졌고 욕망은 더더욱 없다. 학업에 대한 탐구심도 사라졌다.
바라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바라는 상태가 없는 상태 이 자체도 '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음에서 생겨나는 정욕情欲(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욕구) 또한 '도'였을까?
자기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추구하는 것과 반대로 생각해서 일까. 어찌보면 허무한 듯하면서도 그래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이런 마음은 뭐라고 보아야 할까.
그럼에도 내가 삶을 유지 해야할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 먹어야 하는 이유, 만나야 하는 이유 모든 이유에 대한 이유가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남에서 비롯되는 인연의 발생을 존중한다. 태어난 이유가 있지 않듯이 지금의 이유 없는 삶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다만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금 깨어 있는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인 듯 하다.
사명의식이 없어서 불안해 하고 아쉬워 했던 나이지만 그리고 거기에 견주어 보면 한 없이 부족함만을 느끼고 경험이 아닌 관념론자에 머물고 있다는 자신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지행합일'의 결실을 맺을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자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시뮬레이션이 언제까지 나를 평정상태에 둘지는 모르겠지만 그 흐름을 부정하지 않고 시뮬레이션 속 미미한 변화를 잘 감지 하는것에 신경써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