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인식주관의 순수성은 모른다는 것
返初
2015. 10. 8. 22:07
'나'라는 인식주관은 없다. 순수성 또한 없는 것이고 모르는 것인데 절대적으로 있는 것처럼 사유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것을 더 공고히 집착하게 만들고 또 생성시킨다. 그런 가상적인 '나'들이 충돌하는 곳이 바로 현상세계이다.
나는 나를 모른다는 것. 그러므로 타인도 모르고 타인의 행동이나 타인의 마음 또한 모른다는 것.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고 행동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행동에 대해서는 양심이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나 사물 자체의 고유한 개성과 생명은 또 소중하기 때문에 차마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오묘한 심리와 감정은 모두 '나'라는 곳에서 생성되는 인심의 다양한 선심과 악심으로 혼합돼있다. 그래서 오로지 선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바보로 보이기도 하고 적당히 그 상황에 따라 인위적인 선심(선심도 아니지만)과 악심을 섞어 상대를 조종하게 되면 상대는 기뻐하게 된다. 자기라는 주관성을 어떻게 내보이느냐에 따라서 상대는 그 보이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벗어난다면 자기도 모르고 남도 모른다는 것에 다가간다면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희노애락의 과잉에서 벗어나 고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인식주관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모른다'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는 하루이다.
다음에는 '상'을 화두로 삼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