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글
카비르 이야기
返初
2016. 8. 17. 20:10
카비르가 어렸을 때였다. 몹시 추운 날, 그는 시장에 옷을 팔러 나갔다. 마침 한 수행자가 추위에 떨면서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카비르는 수행자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카비르의 어머니가 옷을 판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카비르는 그럴 듯하게 둘러댔다.
"옷을 너무 비싸게 팔아서 그 돈을 다 들고 올 수가 없었어요."
카비르는 부모가 눈치를 챌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숲 속으로 도망갔다. 그때 이름 모를 상인이 나타나 그의 집에 많은 양식을 갖다주었다. 집에 돌아온 카비르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곧 신이 양식을 선물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남은 곡식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카비르에게 물었다.
"식량을 모두 나누어주면 무엇을 먹고 살겠나?"
카비르는 웃으며 대답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부(富)는 나누어줌으로써 줄지 않습니다."
청년이 된 어느 날, 카비르는 숲 속의 수행자가 머물고 있는 한 처소에서 한 낮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열두 살 먹은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카비르를 보고 물었다.
"누구세요?"
"카비르"
"신분이 뭐죠?"
"카비르"
"무얼 하는 분이에요?"
"카비르"
그리고 나서 카비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름과 신분과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전재성, 『거지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