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9. 23:16

고미숙 -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보라

Q : 갑자기 역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게 흥미롭네요 

논리로 따져도 안 되고. 그것을 보면서 감정의 통제가 안 되는 지점이 있고 그게 신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달았죠. 리학에 따르면 몸의 생리적 불균형이 정서적 불균형을 낳고 그게 관계의 갈등을 부른대요. 이런 건 서양 철학이나 과학에선 배울 수 없는 것이었죠.

Q : 서구 철학에서는 이성으로 신체와 감정을 지배하라고 가르치죠
동양 의학에서는 그걸 반생명적이라고 봐요. 양생()은 그런 게 아니에요. 욕망을 드러내야 해요. 감정을 억누르면 결국은 변태나 테러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명리학은 감정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제공해줘요. ‘저이는 오장육부가 어떻고 올해 운이 어때서 저런 식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이해하면 감정이 상하지 않아요.

Q :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결혼이라는 게 직업을 고정시키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본주의가 선택한 제도죠. 그래도 지금 많이 해체되지 않았나요? 1인 가구가 많아졌잖아요. 제도를 바꾸기 전에 이미 일상 자체에서 여러 가족 형태가 나오고 있는 거죠.

Q : 서구의 경우 지금 거의 두 사람 중 하나는 이혼 상태잖아요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명리학적으로 한 번 결혼해 끝까지 사는 건 특이한 팔자예요. 10년만 살아도 정말 오래 같이 산 거죠. 명리학은 에로스적 관계가 끝나면 같이 살아도 부부 관계는 끝났다고 말해요. 10년마다 배우자 운도 변하거든요. 서로 다른 속도를 가진 두 행성이 부딪혀 각자의 속도를 만들어내는데, 그 시간성을 ‘시절인연’이라고 해요. 그 인연이 끝나면 굉장히 당혹해하죠. ‘이렇게 사랑하고 헌신했는데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럴까?’ 이때 동양의 역학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줘요. 보고 나면 많이 풀리고 자유로워져요. 무게가 사라지면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관계를 만들어갈 때 훨씬 가볍죠.

Q : 대안적 성도덕은 무엇일까요 
‘호모 에로스’ 강의할 때 늘 이렇게 말하죠.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점검해보라. 그게 용납이 안 된다면 그건 어떻게든 대가를 주고받는 교환에 불과하다.” 내가 이만큼 줬으니 이만큼 해주세요, 이렇게 시작하면 감정의 블랙홀 말고는 없어요. ‘나는 도저히 용서가 안 돼’, 이건 상대를 파괴하고 나를 파괴할 뿐이에요. 일부일처제 외에 자본주의의 상품 화폐 경제도 영혼을 잠식하는 요인이죠. 흔히 능력을 키워서 연애하자고 하는데, 능력이 커질수록 연애할 기회는 줄어들어요. 저는 여고생들한테 이렇게 얘기해요. 대학 가서 좋은 직업 얻어 멋진 남자 만나 연애하고 결혼할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진짜로 좋은 연애, 좋은 결혼을 하려면 고등학교 중퇴하고 당장 동거를 하라고. 저는 이런 게 정치의 영역이 될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정치는 분배 말고는 없어요. 삶 자체의 리듬, 정서적 리듬의 영역이 정치 안에 안 들어온다는 게 신기해요.

“꼭 뭐가 되고 싶어야 합니까?”


Q : 몇몇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 게 이 사회에 대한 저항이 될까요
저항은 아니고, 여기 오는 건 백수가 되고 싶은 애들이에요. 무엇이 되려고 기획하는 게 무의미함을 동양 사상에서 배웠어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안 미치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가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만들기 위해 사는 게 아니잖아요. 굳이 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잘 살 수 있어요. 아이들이 상처 없이 제 존재를 완전히 자립적으로 살아내는 것. 전 그거 말고는 원하는 게 없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애들이 책을 내면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해요. 아이들이 책을 내서 지성의 향연에 자발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요?

Q : 마지막으로 이 책의 독자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자기 삶에 대한 탐구 없이 일상이 균형을 잡을 수가 없어요. 생리적으로 병과 번뇌에 빠지게 돼요. 살기 위해선 읽어야 해요. 제 삶에 대한 탐구를 당장 시작하는 것이 일용하는 양식보다 더 절박한 생존의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는 지성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사라졌어요. 모든 지성이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살포되고 있잖아요. 굳이 대학 안 가도 모든 자료를 접할 수 있어요. 불경이나[조선왕조실록]까지. 그러니 ‘내가 주부라서’ ‘백수라서’ 혹은 ‘학교를 안 다녀서’라고 할 명분이 없어진 거죠. 다른 사람에게 물어 삶의 지침을 삼는 시대도 지났어요. 성직자건, 지식인이건, 주부건, 그 누가 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증명할 방법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강의합니다. 주부라고 더 봐주지 않아요.

몇몇 사람이 체제를 비판하며 그 체제의 밖에서 자기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어 산다 해서 체제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강요하는 삶을 거부하고도 생존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생존이 행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남은 유일한 저항일지 모른다. 그 모든 위대한 정치적 약속들은 이미 다 거짓으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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