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7. 03:10

성숙한 사랑

섬         

 

               <정현종>

 

 

 

 

그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강신주 시평>

 

고통의 폭이 20m 인 사람이 고통의 폭이 100m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시의 포인트는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이다.

나랑 너랑 사이에 섬이 있고, 나는 그 섬이 가고 싶다.

사람이 고독해서 사랑할까?

아니면 사랑에 빠져서 고독해질까?

후자다. 전자는 사랑이 아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고립된다.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군다. 오직 너만 열 수 있다. 이다.

 

사랑에 빠지면 고독해진다.

A가  B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 A는 안다.

자기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프로포즈 했을 때 승낙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고독은 거기서 온다.

사랑의 궁극적인 형태는 고독이다.

내가 저를 사랑할때 그 저도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대개는...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그것이 섬이다.

(상대가 오기를 기다려 주는 그 자리가 섬이다. 모든 소중한 관계는 섬이 있어야 한다. 기다려 주는 상태이다.)

 

사랑을 하면 분리가 된다.

상대방 부근에는 안 가고 교차된 부분에만 갈 수 있다. (허락도 없이 옆에 가고 주변을 맴도는 스토커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교차된 부근이라는 것은 서로 크로스된 그 공간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더 가면 안된다.

그래서 앞에 하나가 더 붙어야 한다.

'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  그리고 그 섬에 가고 싶은 것이다.

상대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외로운 것이고, 그래서 그 자리는 진짜 외로운 자리가 된다.

 

예전에 메를로 퐁티 책을 읽다가 바로 스쳐간 것이 정현종 시인의  ' 섬 ' 이라는 시였다.

딱 봐도 그런 느낌, 누구나 착시 효과에 빠질 수 있다.

메를로 퐁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붕괴 시켰다.

아! 이 시를 다시보니 정현종 시인이 참 잘 자라셨구나. 했다.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는 거다.

 

고독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고독은 누구와 만났거나 누구와 다퉜거나 , 누구와 싸웠거나, 누구와 부딪힌 다음에 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니 고독해지는 것이다.

인간을 만나고, 역사를 만나고, 몰이해를 당하고, 버림받고 나서, 오해를 당하고 나서 방에 쳐박히는 것이지,

그냥 방에 쳐박혀서 외롭다고 밖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방에만 지낸 사람은 외로움도 모른다.

스스로 유폐시키는 것이 고독이다.

아, 저 사람들 만나지 말아야지, 내 말 하나도 못알아 듣네, 저놈들 만나지 말아야지, 저것들이랑 안 있어야지....

고독이란 것은 가장 성숙한 한 형태이고, 가장 뒤에 오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아름다운 문체로 밝혀낸 것이 메를리 퐁티이다.

 

 

어린 나이에는 기다림의 의미를 모른다. 알면 비범하다.

성숙한 느낌, 너무나 신비하다. 내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어느 순간 한 사람을 기다려보면 아! 내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진짜 나중에 그런 모든 관계들이 다 깨져버려 본 사람들은 안다.

크로스된 부분에서 공유된 지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다리는 것은 사람을 고독하게 하지만, 기다린다는 것은 매력적인 것이다.

 

사랑의 영역도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사랑은 여러가지 형태가 있지만, 사랑을 한다면 고독해진다는 이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

딸과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딸도 엄마를 기다리고, 엄마도 딸을 기다리는 형태,

이 상태를 유지 못해서 자꾸 다투고 속상해 한다.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 주는 것은 노크 같은 것이다. 기다림이란 그런 것이다.

엄마가 딸에게 국 다시 데혀줄까와 6시에 밥먹어 와는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 아! 내가 저 사람 내면으로 지금은 못들어 가는구나,

내가 저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오기를 어느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는구나. '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기다려 주는 그 자리가 섬이다.

 

남녀, 즉 사람뿐만 아니라  애완견 이라도 이렇게 해야 한다.

모든 소중했던 관계에는 섬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그 섬, 거기에만 가서 기다려 주는 것,

상대방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고, 그러한 것이 성숙한 형태의 사랑이다.

섬이 없어서 그냥 빠지거나 그냥 건너버리면 일방통행이 되어 어려워진다.

노크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