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1. 04:36

바디우의 사랑

 사랑은 끈질기게 이어지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험적인 측면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끈질김이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왜곡일 뿐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이 고정되는 순간을 뜻한다.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주의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나와 같은 세계를 보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동일성이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 사랑은 바로 이 순간 동일한 하나의 차이가 된다는 역설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은 존재하고 사랑은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약속한다.”

남성의 입장과 여성의 입장 사이에는 어떤 일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어떤 이가 사랑한다면 일부를 사랑하고 다른 일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를 사랑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플라톤의 말을 바디우는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다. “사랑이라는 대상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우리가 연인이라면 이 대상을 총체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사랑의 실천적인 측면과 철학자의 정의 사이의 관계를, “사랑에 넋이 나간 젊은이라면, 페소아가 말한 ”사랑이 하나의 사고“라는 것을 알아차릴 능력”이 있을 것이며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랑의 찬가를 사랑하는 너에게 바친다. “사랑하기는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함께 포획되는 것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타자와 함께 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본다. ”나는 널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서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런 원천에 담겨 있는 물속에서 나는 우리의 기쁨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의 기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