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전공 한형조(韓亨祚) 교수(56). 동양고전의 현대적 해설을 통해 삶에의 통찰과 행복의 길을 전파하는 한국 인문학계의 쟁쟁한 고수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입심 좋은 얘기꾼·인기 높은 글쟁이다.
한국인은 욕망의 덫에 빠지고, 통하지 못하며, 분노에 지쳐 외로운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그 집단정신의 바탕은 무엇인가?
"정녕 우리 사회는 '냄비사회'다. 성공의 사회학으로부터 재테크가 태어나고, '웰빙'과 '힐링'이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이제 '행복'이 등장했다. 그 행복 증후군은 '스스로 행복 찾아가기', 곧 '빨리 달리기' 대신 '깊이 살기'의 추구다. 대학가에선 문(文)·사(史)·철(哲)이 찬밥 신세지만 살아 본 사람은 안다, '빨리 달리기'만으로 세상을 뚫는 통찰의 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은 이제 먼저 나를 뚫고, 사람을 뚫고, 세상을 뚫기 위해 인문의 힘을 기대한다. 융합·통섭을 얘기하는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 사회적 흐름이다."
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문화를 탐구하는 학문', 그 인문의 열기가 뜨겁다. 인문학, 도대체 뭔가? 동양철학에 정통한 인문학자로서, 현대적 어법으로 설명해 달라.
"인문학은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을 배우고 연마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에서의 종교, 철학 모두 자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성장, 삶을 존중하고 겸손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인문학은 인간적 삶을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할까.”학의 효용 몇 가지를 든다. 첫째,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둘째, 삶을 견뎌내는 기술을 습득시키며, 셋째,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기술은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이며, 고전·역사의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강조다.
우리, 자기 마음·상대방 마음부터 배워가야
Q. 오늘을 사는 우리, 인문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 자신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특히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람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물'이 아닌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는 특히 '나' 자신부터 제대로 다뤄야 함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중심은 물질이 아닌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으면 곤란하다 싶어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 그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고를 인용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Q. 사실 행복은 온 인류의 변함없는 소망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반면 '희(喜·기쁨)'와 '락(樂·즐거움)'이 약하다.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분노'와 '슬픔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기쁨'은 지속적이고 은근한 기쁨, '즐거움'은 손발을 고양시키는 존재의 흥분을 말한다. 그게 곧 행복 아니겠나."
Q. '격몽요결', 어떤 책인가?
"이 책,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동몽수지(童蒙須知)'가 어린이 책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때의 '몽(夢)'자는 어린이를 의미하기보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지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야 한다. '격몽요결'의 대상은 오히려 어른을 향해 있다.
"난, 인문학 강좌에서 '지속적 자기훈련' 강조한다”
Q. 그동안 생활 속의 한국학과 인문정신을 찾는 인문학 강좌에 참 많이 참여했다. 올해 만 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한국학 콘서트', 예술의 전당 '한국철학 강좌',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유전자 탐방열차', 경북대의 '치유인문학: 마음을 살리는 길' 강좌..., 얼마나 많은 강연을 했나? 그리고 강연에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 작은 오해가 있다. 사실 난 강연·강좌 많이 안한다. 가끔 나간다. 인문학강좌는 최근 폭발적으로 늘었다. 레퍼런스(reference)나 소스(source)는 달라도 강연자들이 주고자 하는 인문학적 메시지는 일치한다. 거기 나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스스로 게으르기도 하고, 마냥 나서지는 않겠다는 경계도 있다. 학자들의 최우선의 가치는 여가이다. 공개되었다간 바빠질까 싶어 강연을 VTR로 녹화도 못하게 한다. 아, 농담이다.”
강조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 그의 생각은 뚜렷하다. 인문학이 뭔가? 우리가 살아온 일상의 코드, 곧 물질주의 같은 세속적 지향에서 벗어나 정신적 충족 같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인문학 강좌, 현재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국의 인문정신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가치, 창의성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자리다. 그는 한편 일침을 잊지 않는다. 인문학은 멀고 험한 등정이다. 앉아서 듣는 한두번의 강좌로 '치유'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자동차 운전을 생각해 보라. 매뉴얼만 읽고 운전한다? 턱없는 낙관이다. 지속적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Q. 동양철학, 감히 쉽게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의 영역일 터. '동양고전 전문가', 그동안 공부한 기본 텍스트는 어떤 것들인가? 또 그 텍스트들, 왜 읽고 궁리해야 했나?
"불교의 반야(般若),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원효의 저작, 지눌의 저작, 유교의 공자, 맹자, 제자백가, 송대(宋代)) 주자학, 조선유학의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 동양철학의 기본서를 두루 섭렵했다. 중요한 책은 좀 봤다.
사실 철학에선 많은 텍스트가 필요하진 않다. 불교 역시 경전은 팔만의 방대함을 자랑하지만, 기본적 취지는 심플하다. 반야, 열반, 공(空), 지혜..., 이런 가장 익숙한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 까지 되씹는 것이다. "절대 많이 읽지 말라... 대신 절실하게 체험적으로 사유하라”, 이건 역사적으로 오래 가르쳐 온 고전의 독서법이기도 하다."
그는 주자학의 '골륜탄조(渾淪呑棗)'를 들어 "씹기”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골륜'은 '새가 대추를 통째로 삼키어 먹는다'는 뜻, '탄조'는 '대추를 삼키다'는 뜻이다. 곧 공부를 하면서 조리를 분석하지 않고 두루뭉수리 넘겨 외우려만 들어서야 되겠나, 그런 뜻이다.
Q.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가치를 설파하는 당신,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난감한 질문이다. 나도 잘 모른다. 에둘러서 말해보면, 사실 '행복'이란 말은 수입어, 신조어다. 유교·불교에는 없던 개념이다. 행복은 '요행(幸)'으로 얻은 '행운(福)'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용'에는 '요행수를 바라고, 무리한 일에 뛰어드는 것'을 깊이 경계하고 있다. 대신 '주어진 자리를 지키면서 운명을 수용하기(君子居易而俟命)'를 주문한다. 그 안에, 어디쯤에 '행복'이라는 부수 효과가 들어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게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요컨대, 행복은 쫓아오게 해야지, 절대 쫓아가서는 안된다. 내 생각이다.
이 점에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원래의 취지에 가깝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스파에서 쉬는 것으로들 알고 있는데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 행복이 수줍게 숨어 있을 것이다. 행복 이전에 존재를 물어야한다. 성경도 같은 주문을 하고 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여튼, 요행수에 대박을 꿈꾸거나, 자기 밖의 가치에 매달리지 마라. 남의 눈에 비치거나, 걸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 건강이나 인격에 더 깊이 유의하고 잘 보살펴야 진정 노리는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런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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