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4. 21:40

자기자신이라는 경험에서 빠져나오기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던 교수님과 면담을 하게되었다. 그동안 인연이 되지 않아 항상 바라보기만 하던 교수님이셨는데 오늘에야 인연이 되어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도 듣고 싶지 못했던 그동안의 심정과 편입생과 복수전공이라는 타이틀로 인한 학사의 한계들을 소상히 얘기할 수 있게 교수님은 배려를 해주셨다. 그 배려가 고마웠던지 나는 내 정체에 대해서 기분좋게 하나 하나 말하게 되었다. '대자보를 쓰고, 사회운동을 하고, 수양하면서 깨달았던 점 등' 나에게는 처음 뵙는 분이나 다름 없으신 분인데 나의 얘기를 너무 많이 했나 싶기도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행이도 교수님은 나의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시면서 깨달음의 부분(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헤어나와야 한다는 반성적 성찰)에 대해서 깊이 공감해주셨다. 대화가 다 끝나고 뭔가 찝찝한 마음이 올라왔다. 꼭 이번에 교수님과의 면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평소에 나는 여자가 주변에 많이 꼬인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고 다니는데 이러한 말과 비슷하게 교수님 앞에서도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업적처럼(물론 객관적으로 교수님이 궁금해 하시는 부분들만 말을 했지만) 나열한 내 모습을 보고 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는 의식적으로는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바의 경험이나 사건 들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을 하려고 노력을 하는 부분들이 없진 않지만 그런 말들을 하는 그 자체가 바로 무의식에 깃든 마음의 습성에 (즉 '이러이러한 내가 바로 나다'라는) 깊이 빠져있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여러 사건들과 경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식적인 '나'가 당연히 싫지도 않고 그 또한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것임은 알지만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면 그러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나'의 역사속에서 규정된 채로 내가 머물려고 하는 부분은 자못 위험하다라는 느낌이 든다.

 나를 규정하는 나속에 빠져있게 된다면 나는 영원히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자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즉 자신이 만든 이쁘고 멋진 게스트 하우스속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만족하는 평범함 삶에 녹아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추억하고 곱씹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머물러 마음을 비우고 상대의 마음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서 혹시나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실수하는 것은 없는지 오늘도 반성할 것은 없는지 계속 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그 살펴봄이 끝날 때 과거의 '나'에 사로잡혀버릴 것이다.

 평정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며 '그 순간 깨어있음'이라는 것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시작했을 뿐이다. 하루 하루 실수를 다시 곱씹으면서 내일의 희망을 만들어갈 준비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바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