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5. 21:59

김우창 선생의 진언 - 도덕, 평등, 환경을 회복하자

최근 나는 내가 가슴속 깊이 존경하는 스승 한 분을 만나 뵈었다. 고려대학 영문과를 은퇴하신 김우창 선생님이다. 나는 하버드 대학에서 학위공부를 하는 동안에, 김우창 선생께서 객원교수로 오셔서 바로 내가 사는 곳 앞에 거처를 마련하고 계셨다. 2년 가까이 김 선생님을 모시면서 나는 너무도 많은 것을 배웠다. 학문을 하는 태도라 할까, 학문 그 자체의 궁극적 의미라 할까, 하여튼 이런 문제에 관하여 김우창 선생님은 나에게 심오한 영향을 주셨다. 학문의 의미는 결국 나의 현재적 삶의 깨달음의 역정일 뿐이라는 교훈을 몸소 무언(無言)으로 보여주셨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첫 글을 발표한 계기도 선생님께서 민음사 <세계의 문학> 잡지 편집주간으로 계시면서 마련해주셨다. <세계의 문학>에 실린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매우 단순한 번역문제를 다룬 글인데, 대한민국 지성계의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고려대를 떠났다가, 노태우 정권 때 다시 복직을 시도하자 철학과 교수님들께서 일치단결, 나의 복직을 막았다. 이때도 고려대에 도올과 같은 인재가 안 돌아오는 것은 고려대의 불행이라고 말씀하시며 복직운동을 해주신 유일한 분이 김우창 선생님이셨다.

지금 이런 옛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해야 할 이야기는 최근 김우창 선생님을 만나 나눈 내용과 관련된 것이다. 나는 늘 선생님의 학경(學境)에 대한 향심이 있으면서도, 30년 가까이 선생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작심하고 만나 뵌 것이다. 나는 뵌 김에 우리나라 미래에 관하여 정말 긴요한 과제상황이 무엇인지를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선생님은 주저 없이 다음의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것은 평생을 진실하게 공부해온 노학자가 느끼는 ‘대인의 우환’과도 같은 것일 게다.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는 마음의 소리라서 여기 대선 인터뷰의 서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째가, “도덕회복”이다. 이 말은 매우 진부하게 들린다. 늙은 꼰대의 상투적 얘기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김우창 선생님의 이 말씀은 매우 심오한 새로운 것이다. 도덕에 관하여 20세기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모티비즘(emotivism)의 주장을 외쳤다. 모든 도덕적 명제가 결국 알고 보면 검증 가능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제기랄!” “예이끼!” “기분 나쁘다” 하고 아무 의미 없이 감정을 토로하듯이, 모든 도덕적 판단이 결국 발설자의 감정(emotion)을 표명하는 외마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20세기 인류의 도덕관이 극단적인 회의주의 혹은 허무주의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모티비즘 이전의 근세 서양윤리관은 기껏해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로 귀결된다. 그런데 어떠한 경우에도 도덕은 공리주의적 계산으로 다 해결될 수가 없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과연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행복을 과연 쾌락의 지수에 의하여 계산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자들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고 믿는 자본주의 체계가 과연 이 세계를 도덕적인 최선으로 휘몰아가고 있는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최선이 아닌 최악일 수도 있다.

김우창 선생님의 말씀은 도덕이란 이런 공리주의 계산을 뛰어넘는 우리 양심의 명령이나 보편적 선의지, 칸트가 말하는 정언명령(조건절이 없는 절대명령)과도 같은 것이며, 그 도덕이 가장 잘 표현된 것이 우리 전통사회가 가지고 있던 인의예지와도 같은 절대규범이라는 것이다. 인의예지의 정언명령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가의 ‘솔선수범(teaching by example)’이며 정치의 당위적 임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도덕을 회복해야만 한다!

둘째가 “경제평등의 구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미 양극화·갈등의 문제로서 김종인 대표가 충분히 지적한 주제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김우창 선생님은 이 경제 평등의 문제도 그 핵심은 공리주의적 계산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만 먹기냐? 나도 같이 먹자!”는 식의 질투·질시의 공리적 평등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즉 니체가 말하는 ‘르쌍띠망(ressentiment: 원망의 뜻인데, 약자의 강자에 대한 증오·복수심리)에서 우러나오는 평등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수저-흙수저론에 대하여도 김 선생님은 그것은 삶의 스타일에 관한 것이지 근본적인 수저계급론이 될 수는 없다고 말씀한다. 문제는 금수저이든 흙수저이든 수저의 기능은 밥을 먹는데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같이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금수저냐 흙수저냐 하는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인간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반을 파괴하는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로 지적하신 문제가 자연과의 화해, 즉 환경문제였다. 김 선생님은 지속가능한발전위원회(SDC: Sustainable Development Commission)의 위탁으로 영국 경제학자인 팀 잭슨(Tim Jackson, 1957년생)이 쓴 <성장 없는 발전(Prosperity Without Growth)>이라는 책이 구현하고자 하는 정신, 세계지성들의 새로운 정신적 트렌드를 말씀하신다. 경제(economy)란 원래 ‘짜게 쓴다’, ‘절약한다’는 말이다. 즉 경제는 본시, 검약과 절약의 노모스(규범)였다. 그런데 언젠가 ‘소비가 미덕’이라는 거짓말이 판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장 없는 번영’이란 곧 ‘소비 즉 낭비 없는 번영’을 의미한다. 경제학은 반드시 철학과 재결합되어야 한다.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하고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해도 낙역재기중의(樂亦在其中矣)”라고 말한 공자의 의중을 깊게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환경 말씀을 하시면서 나에게 하신 여러 말씀 중에서 나의 폐부를 찌른 명언이 하나 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연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서울사람들이 그나마 행복할 수 있는 가장 큰 조건이 바로 북한산을 끼고 있다는 것이다. 김 선생님은 영문학자로서 나에게 대오(大悟)의 한마디를 던졌다. “요즈음 한국시가 엉터리예요. 시단이 사라졌어요. 시에서 자연이 사라졌기 때문이죠. 김 선생님이 좋아하는 한시가 뭔 줄 아세요. 한시는 매 줄마다다 자연을 읊어요. 장엄한 애국정서를 말해도 자연을 읊고, 이별의 슬픔이나 재회의 환희를 말해도 다 자연을 빌어 말하죠. 김 선생님 같은 분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부지런히 한시를 가르쳐주어 자연의 위대함, 그 불가항력적인 권위를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정말 부탁드려요. 인간은 자연이 없이 행복할 수 없어요.”

[출처: 중앙일보] [특별기획│2017 대선주자 릴레이 인터뷰] 도올 이 묻고, 남경필이 답하다 “자주적 국가로 코리아리빌딩!”

-http://news.joins.com/article/2076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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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0. 20:46

깨달음은 없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근본에 있어서 시대와의 불화(不和)이어야 하리라. 사건과 같은 충격 그리고 충격 이후에 비로소 돌출하는 뒷일이 깨달음의 본 모습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마침 다람살라에서 돌아온 현기스님의 전화가 왔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 간단했다. "깨달음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깨달음 마저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끊임없는 불화와 긴장 그 자체가 지혜인지도 모른다. 용과 고래의 한판 쟁투가 우리 시대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지혜의 현실적 모습인지도 모른다.

- <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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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품

"제가 우리 공동체 식구들한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사기꾼, 강도, 성 추행범 이런 사람들이 같이 살려고 올 때 우리가 같이 살 수 있겠냐? 우리 절대 같이 못 산다. 그런데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다 끌어안고 살고 있다. 우리가 누구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리가 지금 품이 좁아서 같이 살 만한 사람들하고만 살고 있는 거다. 우리보다 더 품아 넉넉해서 누구든 끌어안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늘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그쪽에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우리한테 안 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가끔합니다."

- <그대 아직 부자를 꿈꾸는가>, 윤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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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7. 20:10

카비르 이야기

 카비르가 어렸을 때였다. 몹시 추운 날, 그는 시장에 옷을 팔러 나갔다. 마침 한 수행자가 추위에 떨면서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카비르는 수행자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옷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카비르의 어머니가 옷을 판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카비르는 그럴 듯하게 둘러댔다.

 "옷을 너무 비싸게 팔아서 그 돈을 다 들고 올 수가 없었어요."

 카비르는 부모가 눈치를 챌 것을 두려워하여 서둘러 숲 속으로 도망갔다. 그때 이름 모를 상인이 나타나 그의 집에 많은 양식을 갖다주었다. 집에 돌아온 카비르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곧 신이 양식을 선물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남은 곡식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도록 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카비르에게 물었다.

 "식량을 모두 나누어주면 무엇을 먹고 살겠나?"

 카비르는 웃으며 대답했다.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부(富)는 나누어줌으로써 줄지 않습니다."

 청년이 된 어느 날, 카비르는 숲 속의 수행자가 머물고 있는 한 처소에서 한 낮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열두 살 먹은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카비르를 보고 물었다.

 "누구세요?"

 "카비르"

 "신분이 뭐죠?"

 "카비르"

 "무얼 하는 분이에요?"

 "카비르"

 그리고 나서 카비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이 이름과 신분과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전재성, 『거지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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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30. 15:54

최상의 진리와 확고한 정진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려 힘써 정진하고,
마음에 나태 없이 부지런히 살며,
확고한 정진을 지니고 견고한 힘을 갖추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붓다의 말씀>, 전재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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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2. 21:52

고린도전서 13장

-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이익을 구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악과 불의를 멀리한다.

2016. 5. 30. 01:28

쾌락의 평등은 고통이 결정한다.

"인간은 자신들이 누리는 모든 쾌락에 대하여 그 고통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 카비르

2016. 5. 17. 19:09

절망을 절망으로 보지 않았던 반 고흐

 반 고흐는 평생 밀레를 스승 삼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죽기 10년 전인 27살 때까지는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었고, 정규교육을 받은 것도 초등학교 2년, 중학교 2년, 이렇게 4년이 전부였습니다. 15살 때 학교에 흥미를 잃어 학교를 그만두고, 16살에 화방에 점원으로 취직해서 7년 동안 점원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때 첫사랑의 실패를 경험하고 절망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23살 때 점원 생활을 접습니다. 그리고 임시 교사, 임시 목사 조수, 서점 점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아무도 가지 않는 광산의 임시 전도사로 가서 1년 정도 있다가 결국 거기서도 해직을 당합니다. 그리고 27살이 되어서 더 이상 해볼 일이 없을 때 반 고흐는 자기가 만났던 가난한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요즘 '스펙, 스펙' 하는데, 반 고흐는 진짜 아무런 스펙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내세울 만한 락력도, 경력도, 자격증도, 특기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27살부터 죽은 37살까지 화가 생활을 10년이나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림이 단 한 장밖에 팔리지 않았고, 아무도 반 고흐를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반 고흐는 37년간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요. 평생을 가족도, 친구도 없이 그야말로 홀로 고독하게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절망적인 삶을 살았는데도 반 고흐가 자기 삶에 대한 연민에 빠져 허덕이는 순간은 그가 쓴 수 많은 편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 고흐가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렇게 산 사람도 있다는 것, 이렇게 나름대로 절망을 극복하면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라도 최소한 반 고흐보다 나은 형편에 있고, 반 고흐보다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반 고흐 이야기를 참고삼아서 여러분의 삶을 좀 더 가치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박홍규, 『스무살의 인문학』.

2016. 5. 2. 02:25

금기된 사랑과 포근한 사랑에 대한 성찰 - 강신주

사랑의 핵심은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으려는 데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랑은 자신이 기쁨을 유지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요구하는 감정이라는 것, 이것은 촉각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사실이 아닐까요? 내가 애인의 몸을 만지고 싶은 진정한 이유는 상대방으로부터 만져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애인을 껴안을 때, 상대방도 자신을 꼭 껴안고 있다는 느낌, 이것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엄마가 되기보다는 항상 어린아이가 되기를 원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따뜻한 포옹이 오늘도 애인에 대한 포옹에서도 반복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이것은 성적으로 성숙한 두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섹스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르트도 이 점을 명확히 알고 있었지요. 


"성교 외에도 부동의 껴안음이란 또 다른 포옹의 형태가 있다. 우린 마술에 걸린 채 황홀해하며, 잠자지 않고 잠 안에 있으며, 잠들기의 그 어린애 같은 쾌감 속에 있다. 그것은 옛날이야기의 시간이요, 나를 고정시키고 마비시키는 목소리의 순간이요, 어머니에로의 되돌아감이다. (…) 그렇지만 이 어린애 같은 포옹 한가운데서도 생식기적인 것은 어쩔 수 없이 솟아올라, 근친상간적인 포옹의 그 분산된 관능을 차단한다. 그러면 욕망의 논리가 다시 작동하고, 소유의 의지가 되돌아오며, 어린이 아이 위에 이중 인쇄된다. 나는 모성적인 것과 생식기적인 것을 원하는, 동시에 두 명의 주체이다." - 롤랑바트르, 『사랑의 단상』


바르트는 애인을 품에 안을 때 발생하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쾌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는 포옹에서 오는 쾌감은 “어머니에로의 되돌아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지만 바르뜨는 성숙한 남녀 사이의 포옹이 가진 분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져지고 있다는 나른한 쾌감 속에서 갑자기 생식기적 본능이 출현하기 때문이지요. 포옹이 수동성, 편안함, 지속성에 강조점이 있다면, 생식기적 본능은 능동성, 불안함, 단발성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따뜻한 젖을 배부르게 먹고 엄마의 품에서 잠드는 노곤함이 포옹이라면, 속이 불편해서 갑자기 설사라도 하는 것처럼 급작스러운 것이 성교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요. 


포만의 지속과 배설의 욕구는 분명 이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트는 말합니다. “나는 모성적인 것과 생식기적인 것을 동시에 원하는 분열된 주체”라고 말이지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분열성은 가장 민감한 촉각 능력과 생식 능력이 성기라는 동일한 기관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는 점입니다. 부드럽게 만져주었을 때 가장 만족스럽고 편안한 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어느 순간 급작스런 절정에 치달으려는 격정적 쾌감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주의해야 할 것은 성기적 사랑을 단순히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불행히도 이런 착각은 플라톤(Plato, BC428?-BC348?)에서부터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까지 어쩌면 지금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철학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성기적 사랑도 사회적 의미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로티즘의 역사(L'histoire d'érotisme)에서 바타이유는 말합니다.


 “금기의 대상은 금지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강력한 탐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 금기는 대체로 대상의 성적 가치(혹은 에로틱한 가치)를 강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고 말이지요. 다시 말해 성기적 사랑의 강렬함은 어떤 금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성기적 사랑은 어떤 금기를 전제하고 있는 것일까요? 다행스럽게도 애커만의 이야기는 우리 의문을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겁니다. 


누군가를 만지고 싶은 열정과 누군가가 만져주기를 바라는 욕망에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금기시하는 신체 부위가 있다. 미국에서는 남자가 허락 없이 여자의 젖가슴이나 엉덩이 혹은 생식기를 만지는 것은 금기이다. (…) 피지에서는 누군가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은 미국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생식기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 벌거숭이라고 사는 원시 부족에게도 몸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가 있다. 사실 금기가 사라지는 상황은 딱 두 가지다. 상대의 몸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연인들 그리고 엄마와 아기.- 다이앤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에커만의 이야기를 뒤로부터 읽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금기가 사라지는 상황은 딱 두 가지다. 상대의 몸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연인들 그리고 엄마와 아기.” 


흥미로운 구절이지요.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신체적 금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지요. 이것은 역으로 말해서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바르트의 생각과는 달리 ‘생식기적인 것을 원하는 것’과 ‘모성적인 것은 원하는 것’은 대립적이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단지 생식기적 사랑은 성기를 금기시하는 사회에 더 강하게 영향을 받고 있을 뿐이니까 말이지요. 그러니까 금기 대상인 성기를 소유함으로써 우리는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피지에서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려고 안달하겠죠. 

불행한 일이지요. 사회적 금기를 반복하고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성기를 함부로 보이거나 만지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성기를 만질 수 있거나 섹스를 할 때에만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지요. 흥미로운 것은 성기에 금기가 집중되어 있는 사회는 대부분 가부장제의 지배를 받는 사회라는 점입니다. 재산과 권력을 자신의 혈육에게 양도하기 위해서, 가부장제 사회는 순결과 금욕의 이데올로기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지요. 우리 사회의 경우도 미국이나 프랑스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사회입니다. 어쩌면 더 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잠시 우리 사회에서 키스가 어떻게 변동했는지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한때는 입술도 성적 금기의 대상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키스는 이전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성적 금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키스가 자유로워졌다는 것은 키스가 금기의 행위가 아니라 친밀감과 편안함의 감각으로 이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키스만으로 사랑을 확인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셈이지요. 

성기적 사랑에 대한 집착은 우리 사회가, 혹은 우리 자신이 어떤 금기를 반복하고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금기를 넘어서 “상대의 몸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사이가 된다고 할지라도, 두 사람이 성기적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든 법입니다. 두 사람은 성기를 통한 성교로 금기를 넘었다는 기억을 공유할 테니까 말이지요. 라캉이 “성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il n'y a pas de rapport sexuel)”라고 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남녀 사이에 순수한 성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적인 관계만 존재한다는 의미이지요. 그렇다면 사회 금기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성관계, 서로의 몸 중에서 성기와 같은 어떤 특정 부위에 고착되지 않는 성관계란 불가능한 것일까요? 물론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것은 포옹과 같은 성관계, 혹은 ‘성기적인 것’을 나름대로 극복하고 ‘모성적인 것’이 강해진 성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바심과 급작스러움이 사라진 성관계이겠지요. 물론 성교와 일정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성적인’ 성관계도 어떤 절정으로 끝나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느긋함의 향유와 같은 모습으로 진행될 겁니다.


2016. 4. 24. 17:09

서화숙이 만난사람 - 전재성선생님

초기불교 4가지 수행법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새기고

아름다움을 추하게 보고 자기 몸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


실천 어려운 대승불교

부처님 말씀 아닌 금강경… 형이상학적 불경 파생시키면서

초기불교 경전의 수행법 외면… 일상서 벗어나면 본질서 멀어져


부처님은 아주 솔직한 사람

대승불교가 부처님 신격화… 관세음보살·문수보살·미륵불…

힌두교의 절대신 개념 첨가돼



오늘(28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교를 믿는 이들이 때로는 신으로, 때로는 최고의 깨달은 자로 받드는, 카필라 국의 왕자요 구도자가 된 고타마 싯다르타가 기원전 7세기에 태어난 날이다. 불교의 가장 큰 축일이지만 승려의 도박과 정풍운동으로 한국 최대 종파인 조계종은 뒤숭숭하다. 왜 수행에 나선 이들이 타락을 하는가. 진짜 부처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 초기불교 연구자로 첫 손 꼽히는 전재성(59) 박사를 만났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과 쾰른대학에서 불교의 초기 경전인 빠알리 불경을 연구한 그는 빠알리어로 기록된 초기불교 대장경인 니까야를 가장 많이 원문에서 번역한 번역자로도 유명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다.

_원적 연구에 따르면 4월초파일이 부처님이 태어난 날은 맞습니까?

"남방(빠알리어 초기 불교경전을 믿는 나라는 주로 남방이다)에서는 음력 1월 보름이 부처님 태어나신 날이자 출가한 날, 깨달은 날, 열반한 날이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5월 보름에 해당하지요. 북방에서는 탄생일 출가일 성도일열반일이 다 달라요. 역사적으로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빠알리어 대장경인 <니까야>(부처의 언행과 일생이 제자와의 문답형식과 시문으로 담긴 초기경전)에는 부처님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문학으로만 평가되는 <라마야나>나 <바가바드기타>와 달리 <니까야>는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그 기록이 사실로 인정되어 인도 역사에까지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편입됐지만 그런 기록은 없어요."

_부처님은 왜 세상에 오신 건가요?

"부처님이 의도를 가지고 왔다면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거지요."

_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님은 어떻게 하라고 가르쳤습니까?

"초기불교에서 부처님이 가르친 수행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자애관(慈愛觀).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겁니다. 누구한테 자비를 베푼다기보다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미움 증오 혐오 악하고 불건전한 감정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요. 두번째는 무상관(無常觀)으로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서 성찰하는 거지요. 생겨나는 측면만을 보는 사람은 영혼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항상 무엇이 있다는 것만 보니까 현실에 집착하고 탐욕을 가지게도 되지요, 없다라는 측면에서 사람이 죽는 측면을 너무 강조하면 비관주의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어 있어요. 무상관은 생겨나는 것과 사라지는 것,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보는 거에요. 흔히 불교가 모든 걸 무상하다고 하니까 허물어져 가는 것만 본다고 생각하는데 양쪽을 다 보는 게 무상관이에요. 그 다음으로 부정관이 있어요. 우리 몸을 더럽다고 보는 겁니다. 빠알리어로는 아쑤바라고 하는데 쑤바란 아름답다는 거고 아는 쑤바의 반대에요. 추하다는 거지요. 정확히 번역하면 불미관인 셈이지요. 우리가 탐욕에 빠지는 것은 아름다운 것에 끌리기 때문이니까 탐욕을 끊기 위해 아름다움을 추한 것으로 봐서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지요."

_불교는 인생의 좋은 것을 추하다고 보고 그걸 외면하라니 이해하기는 힘드네요.

"그걸 뛰어넘으면 또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불교에서는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 단계에 이르면 추한 것에서도 아름다움을 느껴요. 겉으로는 깨끗해 보이지만 방부제가 들어있는 것이 깨끗한 더러움이라면 집에서 손수재배한 상추는 벌레 먹어도 더러운 깨끗함이잖아요. 그런 단계를 알게 되는 거지요. 그 다음에는 호흡관이 있어요. 자기 몸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다른 것은 다 멈추고 호흡만 느껴지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호흡을 미세한 신체라고 했어요. 호흡을 들여다보면 일체의 생각을 잊어버리게 되고 마음이 평화롭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즐거울 때는 아무 생각이 없잖아요. 호흡을 관찰하면서 호흡마저도 잊어버리는 경지가 되는 거에요."

_방법은 역시 명상인가요?

"명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숙고를 하는 거지요. 우리나라 불교가 참선을 한다고 해서 사유와 숙고를 빼버렸어요. 동작도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고요. 부처님은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골고루 이야기했어요. 걸어다니고 서있고 앉아있고 누워있고 부처님이 특정한 자세를 강조한 거 아니에요. 스리랑카에서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참선해요. 자세도 한 가지를 오래 하면 건강에도 좋지 않아요. 행주좌와 어떤 자세든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해요."

_수행은 왜 해야 하는 겁니까?

"쓸데없이 탐욕이 생기거나 욕망이 생기면 실존적인 존재가 위험에 처했다는 거거든요. 그걸 자각을 해야 돼요. 없애야 돼요. 그런데 그냥은 안 없어지지요. 부정관을 하면 없어지지요. 그리고 세상의 고통의 상당 부분은 누구를 미워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잖아요. 자애관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천인공노할 사람도 행복하길 바라는 거냐. 그건 아니에요. 그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 되어서 행복하길 바라는 거지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실천하기 힘들어요. 거의 모든 종교들이 불가능한 걸 실천하라고 해요. 그러면 그걸 가르치려는 사람하고 실천하려는 사람 사이에 너무 큰 간격이 생겨요. 가르치는 사람한테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불교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종교를 가르치는 거에요."

_그런데 최근 조계종 사태만 봐도 절에서 가르치는 게 꼭 그런 아니에요.

"초기 불교가 뿌리라면 대승불교는 가지나 꽃인데 근본적인 가르침을 잊어버려서 그래요. 대승불교의 가르침은 부처님을 신격화해서 신격화에 의존하는 가르침이지요. 소승불교의 가르침은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이에요. 그래서 소승불교를 배운 사람은 철학박사학위를 주지만 대승불교를 한 사람은 문학박사학위를 줘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변질해서 권력과 결탁을 하니까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 지배계층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게 금강경이에요. 부처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지요. 그런데 당시 그걸 쓴 사람을 밝히면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 그걸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 거에요. 금강경 내용이 뭐냐면 깨달아서 얻을 것이 없다는 거에요. 왜냐면 초기불교에는 진리의 흐름에 든 사람부터 아라한까지 16가지 성자의 단계가 있어요. 이건 정신적인 단계인데 변질이 되면서 수행자 내부에서 계급이 생겼어요. 이걸 부정하느라 깨달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지요. 초기불교의 가르침이 잘못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초기 불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런데도 이걸 부처님 말씀처럼 믿고 금강경을 모태로 여러 가지 불경이 나오게 됐어요. 이것 때문에 초기 불교 경전에 있는 굉장히 쉽고도 실천적인 방법들이 외면되어 왔어요. 원수를 이웃처럼 사랑하라, 누구한테 자비를 베풀라, 이건 힘들어요. 그러나 상대방이 좋게 되길 생각해라, 이건 누구나 실천할 수 있어요. 부처님은 인간이 세가지로 구성돼 있다고 했어요. 정신 언어 신체. 이게 긴밀히 연결돼 있어서 영향을 미쳐요. 정신적으로 누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면 언어도 달라지고 신체도 달라진다라는 거에요.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이렇게 쉽고도 연기성이라는 철학을 일러주지요."

_수행법 자체는 확실히 초기 불교방식이 쉬워 보이네요.

"수행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 자체가 이해하기 쉽지요. 부처님의 가르침가운데 일체라는 것이 있어요. 시각과 시각의 대상, 후각과 후각의 대상, 촉각과 촉각의 대상, 미각과 미각의 대상, 이게 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라는 거예요. 그래서 삼라만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건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마음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요. 이건 누가 봐도 틀린 말이잖아요. 세상이 다 자기마음대로 될 수가 있나요? 부처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일상에서 벗어나면 본질에서 멀어지게 되어 있어요."

_그러면 진짜 부처님의 뜻을 따르려면 어떻게 하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부처님 원래 뜻을 따르려는 초기불교를 소승불교 열등한 불교라고 인식하려는 경향이 강했어요. 조사선이라고 중국의 선승을 부처님 머리꼭대기로 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진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려면 원래 처음의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배워야 해요. 초기불교의 가르침은 국민학생도 따를 쉬운 가르침이면서도 여든살 먹은 노인도 하기 힘든 가르침이에요. 이걸 모르면 너무 많은 방황을 하게 되는 거지요."

_<니까야>는 다 번역이 됐습니까?

"1999년부터 도법스님의 도움을 받아서 시작했어요. 차도 없는 양반이 무슨돈이 있겠어요. 주변에 보태라고 해서 여러 스님들이 도와주셨어요. 부처님과 제자의 대화는 거의 다 번역이 됐지요. 과거에도 일본어책에서 중역본은 나왔는데 부처님의 문답을 어느 것이 질문이고 어느 것이 대답인지구분을 하지 않아서 제자의 말이 부처님 말로 소개된 책도 있어요."

_<니까야> 번역하면서 부처님의 육성을 접해보면 우리가 알아왔던 부처와 무엇이 가장 다른가?

"부처님은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병문안을 가면 환자들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하면 '네 나이에 병이 들어서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말해요.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기를 바란다.' 꼬살라에 빠세나다 왕이라고 할머니가 키운 왕이 있는데 이 할머니가 120살이 되어서 돌아가시는 데에도 너무 슬퍼하니까 부처님이 그래요. '사람은 누구든지 죽음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바라문들은 큰 제사를 지내면 영생을 누린다, 하늘나라에 보내준다 그러는데 부처님은 진리를 이야기하니까 왕은 오히려 감복을 합니다."

_우리가 흔히 쓰는 불교용어에도 왜곡이 많겠네요.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게 많지요. 관세음보살은 아발로끼테수와라의 음역인데 아발로끼테는 보살피다 굽어살피다, 이수와라는 최상의 지배자라는 뜻이니까 기독교의 여호와 같은 하느님 같은 절대자 개념이지요.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 천개의 손과 눈을 갖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초기불교의 자애관을 인격화한 거에요. 대승불교가 힌두교의 절대신 개념을 다 넣어서 만든 개념이지요. 문수보살, 보현보살, 미륵불도 다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남방불교에서는 오히려 대승불교는 힌두교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대승불교에서 쓰는 '동체대비'(同體大悲) 같은 말도 우주가 한 몸이니까 자비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는데 너무 형이상학이라 실천이 어려워요. 부처님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거든요. 제자가 '저기 불쌍하고 꾀죄죄한 사람이 지나가는데 어떤 마음을 내야 내가 죄를 짓지 않습니까' 묻지요. 불쌍하게 여겨도 올바른 마음은 아니거든요. 자기는 우월하고 불쌍하게 여겨지는 사람은 낮아지는 거니까. 부처님은 대답이 간단해요.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나도 한 때 그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라.' "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