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9. 17:28

인간의 단계

모든 존재하는 생명체는 영기를 띠고 있다.

이 영기는 점차 고등동물이 되어갈수록 점차 의식을 띠게 되며

완성에 가까워질수록 그 마음이 맑고 강해진다.

그 의식의 차이가 곧 인간적 차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과거의 업이 다 다르기 때문에 타고나는 것이 다 다르며

현실적 깨달음과 수양에 의해 그 인간적 차이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인간이라고 해서 다 인간이 아니며

동물적인 단계에서부터 성자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인 것이다.

완성된 이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과는 다르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맑기는 하나 아직 기운이 여려 매우 약하다.

완성된 자의 마음은 맑고 강하므로 결코 어둠에 물들지 않으나

어린아이의 마음은 여리고 습이 깃들어 있으므로 어둠과 악에 쉽게 물들며

그 속에 잠재되어 있는 애욕과 습이 곧 나타나

마음이 번잡하고 어지러워지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완성에 이를수록 그 마음은 더욱 맑아져

사실을 보게 되고 거짓을 버리게 되며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는 올바른 눈을 가지게 된다.

그는 남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소유하려 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세상을 섬기며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를 축복해 주려 한다.

끝없이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을 신성으로 승화시키는 우주의 보물인 것이다.

사람이 완성에 가까워지면 그의 몸은 순수한 기운으로 넘치기 때문에

고기와 같은 탁한 음식은 받지 않게 되며

식물류의 순수한 기운만 있는 음식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마음에는 감정이 사라지고 항상 맑은 고요가 감돌며 몸에는 애욕이 사라지고

성기는 어린아이처럼 작아지며 이마에는 순수한 기운이 맺혀 사리가 생겨난다.

이러한 현상이 세상 속에 생겨나기에 인생은 단순한 것이 아니며

삶 속에는 인간이 믿고 따를 진리가 있으며

삶은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진실의 근원」, 홈페이지 '인간의 단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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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서암 사언(瑞巖師彦) 스님이 아침마다 자신을 “주인공(主人公)”이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한 주인이 아니라 존칭어인 공(公)을 붙여서 부를 정도로 서암 스님은 깨달음이란 별것이 아니라 바로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남이 아무리 선의지를 가지고 조언을 해도, 그 말에 따라 사는 순간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악의를 가지고 우리를 노예로 부리려는 사람에 대해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 《법보신문》, 2. 암환주인(巖喚主人당신은 주인공으로 사는가 아니면 손님으로 사는가」,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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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무사시의 <독행도>

1.세상의 도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2.내 한 몸을 위해 육체적인 안위를 꾀하지 않는다.

 3.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4.내 한 몸을 가볍게 여기고 세상을 중히 여긴다.

 5.일평생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6.사사로운 일에 후회하지 않는다.

 7.남을 시기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8.어떠한 경우에도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9.누구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다.

 10.연정을 품지 않는다.

 11.어느 것에도 편애를 두지 않는다.

 12.거처할 집에 대해 욕심 부리지 않는다.

 13.몸에 좋은 음식을 바라지 않는다.

 14.값어치가 될만한 골동품을 일체 소유하지 않는다.

 15.흉한 징조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다.

 16.무기 이외의 다른 도구에 마음을 허비하지 않는다.

 17.병법의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8.부처님을 경배하되 의지하지는 않는다.

 19.목숨을 버릴지라도 명예와 자긍심을 버리지 않는다.

 20.항상 병법의 도를 마음에 둔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독행도>에서


― 한겨레,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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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비밀

<인생의 비밀>

 

어느날 오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한다. ‘내가 떠난 후에는 내가 가진 재산을 네가 물려받아야하는데, 그 전에 인생의 비밀을 찾아 내게 가져와야한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다. 할아버지는 단 하나의 힌트만 주었다. ‘드넓은 하늘 아래 그 비밀이 숨어있다.소년은 세계를 여행하며 질문을 하고 여러 격언을 듣는다. 나무에게 삶의 비밀을 묻자 나무는 항상 땅에 단단히 뿌리박고 있어야 변화의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반면에 농부는 잘은 모르지만 삶의 비밀은 씨앗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씨앗을 심고 돌보듯 생각을 키우면 어느새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11년이나 세계를 떠돌며 여기저기에 삶의 비밀을 물어보지만 결국은 찾지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넌 이미 그 해답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인생의 비밀을 찾아 헤맨 너의 여정이 바로 인생의 비밀이란 것이다. ‘그 길을 따라서 배운 모든 것들은 소년이 보람있고 풍요로운 인생을 즐기기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제 나의 모든 재산은 너의 것이라고 말한다. 소년은 재산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할아버지는 저 넓은 하늘 아래 있다고 말한다. ‘저 넓은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너에게 물려줄 재산들이라고.

 

 ― 그림동화 <넓은 하늘 아래>(트레버 로메인 글·그림, 임지현 옮김, 리드북 펴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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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나눔>

 

기부와 나눔은 정의다

개인의 기부가 곧 공공복지사회의 초석이다

나의 자발적인 기부는 정의로움이며 사회적책임 이기도 하다

나 개인 역시 사회속에 일원이기 때문이다

나누며살자

내가 쓸수 있는 모든 것들을 타인에게 힘을 주는 것에

나누어주며 살다가 떠나가자

어차피 인생의 끝지점은

아무것도 허락되는것이 없는

제로지점.

 

영원히 있지 못함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음에 기뻐하라

더 좋아 해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이만큼 좋아 해주는것에 만족하고 애태우고 윈망말아라

사랑 할수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라

더 많이 못 준것에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 하며 질투하지마라

결국 어떤 존재도 태어난것은

파도가 일어났다 사라지는것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그것이 법이다.


― 한겨레, 「휴심정」

2017. 1. 28. 13:05

마음을 연다는 건 상처도 수용하는것


마음을 연다는 것은 상처받을 가능성을 어느 정도 남긴 채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면 상처받을 여지도 수용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자기를 꽁꽁 싸매고 보호하려 든다.

그저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나 할까.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려면 그 대가로 고통마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삶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

꽁꽁 싸맨 마음은 모든 것에 대해 영원히 닫혀 있을 테고, 기쁨마저 닫게 된다.

 

― 한겨레 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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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프롬 『사랑의기술』 정리

에리히프롬 사랑의기술정리

 

 

- 사실 우리 문화권 내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랑스럽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기와 성적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서로 전혀 모르고 지내던 두 사람이 자기들 사이에 놓여 있던 벽을 허물어버리고 똑같이 느끼며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 있는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은 특히 고립되어 사랑 없이 지내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멋지고 기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이 기적은 특히 성적 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주도되고 이와 결합될 때 더욱 촉진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형의 사랑은 그 성격상 지속적이지 못하다.

 

-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자신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고독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려는 욕구이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은 곧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분리되어 있다는 경험은 불안감을 자아낸다. 확실히 그것은 모든 불안의 근원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적인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단절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무력함을 의미하며, 이 세계, 즉 사물과 인간을 능동적으로 파악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 이처럼 분리는 격렬한 불안의 근원이다. 그것을 넘어서 분리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유발시킨다.

 

- 성적인 극치감은 황홀경에 의해 유발되거나 어떤 마약의 효과로 생겨나는 것과 유사한 상태를 자아낸다.

 

- 분리감을 제거하지 못한 개인들이 성적 극치감을 찾으려는 노력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과 별로 다르지 않은 기능을 떠맡게 된다. 그것은 분리감에 의해 야기된 불안에서 탈출하려는 절망적인 노력이며, 결국 분리감은 점차 증가하기만 한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성행위는 순간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을 결코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 현대 서구사회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중독, 강박적인 성애 중시와 자살 등은 군중에의 동조에 상대적으로 실패한 사람들에게서 불 수 있는 증상들이다.

- 공서적 일치의 수동적인 유형은 복종, 또는 임상적인 용어로 피학대 음란증이다다.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은 자신을 지휘하고 인도하며 보호해 주는 타인의 일부가 됨으로써 견디기 힘든 고독감과 분리감으로부터 도피한다.

 

- 공서적 융합의 능동적인 형태는 지배, 또는 피학대 음란증에 대응하는 심리학적 용어로 학대 음란증이다. 학대 음란증적 인간은 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고독감에서, 갇혀 있다는 감정에서 벗어나려 한다.

 

- 공서적 일치와 대비하여 성숙한 사랑은 개인의 통합성, 즉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일치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인간을 타인과 분리시키는 벽을 허물어 버리고 타인과 일치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고독감과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각자에게 자기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따로따로 남는다는 모순이 성립한다.

 

-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 그는 감정을 능동적인 감정과 수동적인 감정, 행위열정으로 구분한다. 능동적인 감정을 행사하는 사람은 자유롭고 자기 감정의 지배자이다. 반면에 수동적인 감정이 나타날 때 인간은 충동을 느끼며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동기에 좌우되는 대상이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덕과 힘은 하나이며 동일하다는 명제에 도달한다. 시기와 질투와 야망 등 모든 종류의 욕심은 열정이다. 반면 사랑은 행위이며 오직 자유로운 상황에서만 행할 수 있고 억압의 결과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인간의 힘의 행사이다.

 

- 사랑은 수동적인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랑의 능동적인 특징을 나타낸다면, “사랑은 기본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즐겁다. 왜냐하면 주는 것은 박탈이 아닐 뿐 아니라 주는 행위를 통해서 나의 생동감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머니는 자기 안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유아에게 젖을 먹이고 체온을 준다. 주지 않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 그는 받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기쁨이다. 진실로 주게 될 때 그는 그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사랑의 적극적인 성격은, 모든 형태의 사랑에는 공통되는 기본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보살핌책임’, ‘존경지식이다.

 

- 사랑이란 사랑하는 존재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 존경은 다른 사람이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며, 착취가 없는 상태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성장하기를 바라며 자신을 위해서, 나에게 봉사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식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 사랑하고 내 자신을 내주며 다른 사람에게 침투해 들어감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찾고, 나를 발견하며, 우리 두 사람을 찾아내고,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 환상이나 비이성적으로 왜곡된 인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아야 한다. 오직 내가 인간 존재를 객관적으로 알아야만 사랑의 행위를 통해 그의 궁극적인 본질을 알수 있는 것이다.

 

-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찾는 것은 진정 사랑받는 자가 그를 찾을 때이다

 

-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만족스럽고 더 즐거운 것이 되며, 사랑하는 것이 사랑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된다. 사랑함으로써 자기 도취와 자기 중심성에 의해 구축되었던 고독과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 어머니의 삶의 일부는 아이가 독립적이고, 결과적으로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야 한다는 희망에 바쳐져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원칙과 기대에 의해서 인도되어야 한다. 그 사랑은 위협적이고 권위적이라기보다는 인내심이 많고 관용적이어야 한다.

 

- 신경증이 일어나는 한 가지 원인은 한 소년이 애정은 있지만 지나치게 방임하거나 군림하는 어머니와 약하고 무관심한 아버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경우 그는 초기의 어머니에 대한 애착에 머물러 있다. 즉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무기력하며 수용적인 인간, 받기를 좋아하고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그에게는 아버지다운 자질, 즉 훈련과 독립, 그리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능력이 모자라게 된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서 어머니를 찾으려 하며 때로는 여자에게서, 때로는 권위와 힘의 영역에 있는 남자에게서도 어머니를 찾으려고 한다. 반면에 어머니가 냉정하고 무관심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그는 어머니의 보호에 대한 욕구를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상으로 전환시킬 것이다. 이 경우에도 결과는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일방적으로 아버지 지향적인 인간, 즉 법과 질서 그리고 권위의 원리에 충실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대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 만약 어떤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이다. 심지어 사랑받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랑의 강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야 할 것은 올바른 대상이 전부이며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한 나는 난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 이 세계를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무기력한 사람, 가난한 사람,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형재애의 시작이다.

 

- 모성애의 자아 도취적 요소를 찾아볼 수도 있다. 아기가 아직 어머니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한, 어머니의 사랑과 열중은 자아도취적인 만족일 수 있다.

 

- 모성애에서는 하나였던 두 사람이 분리된다. 어머니는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분리를 바라고 도와 주어야 한다. 바로 이 단계에서 모성애는 지극히 어려운 것이 된다. 비이기심, 즉 모든 것을 주고 사랑받는 아이의 행복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 우선 성애는 사랑에 빠진다는 폭발적인 경험, 즉 그 순간까지 존재했던 두 사람 사이의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것과 흔히 혼동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던 바와 같이 갑자기 친밀해진다는 경험은 기본적으로 단명한다.

 

- 상대방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경험을 한다면, 그의 인격의 무한성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상대방을 그렇게 친밀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장벽을 극복하는 기적은 아마 매일 새롭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타인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도 곧 탐구되며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분리의 극복을 나타내 주는 다른 요소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 자신의 희망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신의 순진한 혹은 유치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 세계에 대해 공통의 관심을 형성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분리를 극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분노, 증오, 자제심의 완전한 결여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친밀감으로 여겨진다.

 

- 그러나 이런 형태의 친밀함은 모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축소된다. 결과는 새로운 사랑, 새로운 낯선 사람과의 사랑을 찾는 것이다. 다시 닻선 사람이 친밀한사람으로 변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경향이 흥겹고 강렬해지며, 다시 점차 그 강렬함이 누그러져 새로운 사랑은 이전과는 다르리라는 환상에 젖어 새로운 정복,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는 희망으로 끝난다. 이러한 환상은 성욕의 기만적 성격 때문에 더욱더 조장된다.

 

- 성욕은 사랑에 의해서 자극되는 것처럼, 고독으로 인한 불안과 정복하거나 정복당하려는 희망, 허영과 상처를 주고 파괴시켜 버리려는 희망에 의해서도 자극된다.

 

- 만일 육체적 일치를 향한 욕구가 사랑에 의해서 자극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취적이며 순간적인 감각을 넘어서는 일치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결코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서 서로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의 사랑을 사실 서로간의 자기 중심주의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을 상대방과 동일시하며 하나의 개인을 둘로 확대함으로써 분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두 사람이다. 그들 두 사람은 고독의 극복을 경험하지만, 나머지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있고 소외된 상태로 남는다. 결국 그들이 갖는 일치의 경험은 환상인 것이다.

 

- 우리가 모두 하나인 한, 우리는 형제애라는 의미에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다른 존재인 이상 성애는 모든 사람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특별하고 매우 개인적인 요소를 필요로 한다.

성애를 완전히 개인적인,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보는 견해나 성애는 의지의 행위에 불과하다는 견해나 모두 옳다. 그러나 좀 더 적절히 표현하자면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쉽게 해소될 수 있는 관계로 보는 생각이나 어떤 상황에서도 해소되어서는 안 되는 관계로 보는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면서 자기 가족은 사랑하는, 즉 윌리엄 제임스가 말하는 일종의 노동의 분업과 같은 방식이란 결국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기본적인 표시이다.

 

- 신경증적 비이기주의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데 그들은 그 증상 때문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른 것, 즉 좌절과 권태와 작업에서의 무기력과 애정 관계에서의 실패 등으로 인해 시달리고 있다. ‘증상으로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결점을 보충하는 성격적 특질이 되어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 ‘비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타인을 위해서 살며 자기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는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하며, 자기의 비이기심에도 불구하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고 의아해한다.

 

- 그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나 어떤 일을 즐기는 능력이 마비되어 있고, 삶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 있으며, 비이기주의라는 표면 뒤에는 미묘하지만 매우 강렬한 자기 중심성이 숨어있다.

 

- 아이들은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고 덕이라는 가면 아래서 삶에 대한 적의를 배운다.

 

- 만일 당신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당신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덜 사랑하는 한, 당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데 진실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을 포함해서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들을 한 사람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며 그 사람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사랑하며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하는 위대하고도 공정한 사람이다.

 

-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어떤 것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지 않고 또 신으로부터 무엇을 받고자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식할 정도로 자기의 한계를 감지할 수 있는 겸손을 갖고 있다.

 

- 인도 사상이나 소크라테스의 사고처럼 도교에서도 사고가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단계는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알지만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최고의 각성이고,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질병이다.”

 

- 도를 아는 사람은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에 대해 말하려 하는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 브라만교에서뿐만 아니라 불교와 도교에서도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올바른 믿음이 아니라 올바른 행위이다.

- 아버지나 혹은 다른 권위에 대하여 유아기적 의존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는 좀더 성숙한 신에 대한 사랑을 발달시킬 수 없을 것이다.

 

- 오늘날 자본주의는 별 마찰 없이 많은 사람들과 협동하고 점점 더 많이 소비하고자 하며 기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또한 자기가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어떠한 권위나 원칙 또는 양심에 지배받고 있지 않다고 느끼지만, 기꺼이 명령에 복종하며 해야될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종하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 그 결과는 무엇이겠는가? 현대인은 자기 자신과 동료와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는 상품으로 변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현존 시장 조건 아래서 최대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투자로 경험하게 된다. 인간 관계는 근본적으로 소외된 자동 인형의 관계가 되고 군중과 함께 있을 때에만 안전함을 느끼게 되며, 따라서 사상이나 감정 또는 행위에 있어서 차이점이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된다.

 

- 우리의 문명은 이런 고독을 의식적으로 인식할 수 없게 하는 많은 완화제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먼저 관료화된 기계적인 작업의 엄밀한 규격화로 인해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욕구, 즉 초월과 일치에 대한 동경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작업의 규격화만으로는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하므로 인간은 오락 산업이 제공하는 즐거운 소리와 구경거리를 수동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무의식적인 좌절감을 극복한다. 심지어는 새로운 물건을 사고 그것을 서로 교환하는 가운데 만족을 얻게 된다.

 

- “인간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흔들린다라든가 오늘 즐길 수 있는 오락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또는 가장 절정에 대한 표현으로서 오늘날 모든 사람은 행복하다와 같은 주장에 의해서 인도된다. 인간의 행복은 즐김에 있다.

 

- 세상은 우리 식욕의 한 거대한 대상으로서 큰 사과이자 커다란 우유병 커다란 가슴이다. 우리는 젖먹이 어린애이자 영원히 대기중인 자이며, 희망에 가득찬 자이고 영원히 좌절에 빠진 자이다.

 

- 남편은 아내의 새 옷에 대해, 맛있는 요리에 대해 칭찬을 해야 한다. 또한 아내는 남편이 지치고 시무룩해져 돌아왔을 때는 그를 이해해야 하며, 자기 사업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경청해야 하고, 아내의 생일을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관계는 전생애 동안 낯선 사람으로 남아 있고 결코 핵심적 관계에 도달하지 못한, 서로를 예의 바르게 대하고 기분 좋게 하고자 하노력하는 두 사람 사이의 원활한 관계이다.

 

- 이러한 사랑과 결혼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독감으로부터 피난처를 찾는 데 있다. 사랑을 통해서 인간은 드디어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를 찾게된다. 세상에 대항하는 두 사람만의 동맹을 결성하고 이러한 두 사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인된다.

 

- 프로이트는 인간은 모든 여자를 성적으로 정복하려는 무한한 욕망에 의해 충동받으며, 오직 사회의 억압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욕망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가정을 세움으로써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필연적으로 서로를 질투하며, 이런 상호간의 시기와 경쟁은 그에 대한 모든 사회적, 경제적 원인들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지속될 것이다.

 

- 사람들은 모든 정신 현상의 근원은 생리학적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사랑, 증오, 야망, 질투 등을 다양한 형태의 성적 본능의 결과로 설명하였다. 프로이트는 근본적인 현실이 인간 존재의 전체성에,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인간 상황과, 둘째로 특정 사회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삶에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다.

 

- 모든 본능적 욕구의 완전한 만족은 행복의 근원이 되지 못하며, 심지어 안정을 보장해 주지도 못한다.

 

- 신경증적 사랑의 근본적 제약은 애인중의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부모의 인상에 집착한 채로 남아 있고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해 가졌던 느낌과 기대, 두려움 따위를 상대방에게 전이시키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사람은 유아적 관계의 유형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애정적 욕구에서 이러한 유형을 추구한다.

 

- 아직도 어머니의 젖을 떼지 못한 남자들은 어린아이로 남아있다. 그들은 어머니의 보호와 사랑과 온화함, 보살핌과 칭찬을 원하며, 그냥 필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머니의 자식이고 무력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한다.

 

- 그러나 여자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피상적이며 무책임하다. 그들의 목적은 사랑받는 것이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 남자는 심하게 상처받고 실망했다고 느끼며 흔히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며 이기적이고 건방지다는 생각으로 이러한 관념을 합리화 한다. 귀여운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태도가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것은 곧 사랑의 부족을 나타내는 증거로 여겨진다. 이러한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자기들의 애정 행위, 쾌락을 얻으려는 소망과 진실한 사랑을 혼동하고 있으며 따라서 자기들이 불공평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이 매우 뛰어난 연인이라고 상상하며 자신의 사랑의 상대자가 배은망덕하다고 몹시 불평한다.

 

- 사랑과 의무라는 명목으로 어머니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이 된 자식을 자기 품 안에 두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식은 어머니를 통하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도 없고, 모든 여인을 타락시켜 버리는 피상적인 성적 수준을 제외하고는 사랑할 수조차 없다. 그는 결코 자유로워지거나 독립적일 수 없고 영원히 불구자나 범죄자로 남게 된다.

 

- 자기의 모든 애정과 관심을 아들에게 집중하는 경우 그는 좋은 아버지거나 동시에 권위주의자이다. 그는 자기 아들의 행동에 대해 만족할 때면 언제든지 아들을 칭찬하고 선물을 주며 다정하게 대하지만 반대로 아들에 대해 실망하면 그는 물러서거나 꾸짖는다. 아버지의 애정이 자기가 받는 유일한 애정인 사람은 노예적인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집착하게 된다. 인생에서 그의 주요 목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것에 성공했을 때 그는 행복해하며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만족을 느낀다. 그렇지만 실수를 범했거나 실패했을 때, 혹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 못했을 때, 그는 의기소침해지며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낀다. 그런 남자는 어른이 된 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집착할 수 있는 아버지 상을 찾으려 한다.

 

- 부모의 소원한 사이는 동시에 자식에 대한 관계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아버지나 어머니 누구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는 소녀로 하여금 의아스럽고 두려워하게 만든다. 그 소녀는 부모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는 지를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항상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알려지지 않는 신비에 싸인 요소가 남아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소녀는 자기 자신의 세계 속으로 움츠러들어 백일몽을 꾸고 격리된 채로 남아 있게 되며, 성인이 된 후의 애정관계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게 된다.

 

- 게다가 그러한 움츠림은 심한 불안을 야기하고 이 세상과 별로 관계가 없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강렬한 흥분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피학대 음란증적인 경향을 가져오게 된다. 흔히 그런 여자들은 좀더 정상적이고 분별 있는 행동을 하는 남편보다는 소리지르고 야단치는 남편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최소한 그렇게 함으로써 긴장감과 거기서 오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정의 중립성이라는 괴로움을 자아내는 미결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경우도 그리 드물지 않다.

 

-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위대한 사랑으로 경험되는 사이비 사랑의 형태로서 우상 숭배적 사랑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힘의 생산적 전개에 바탕을 둔 동일성, 즉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우상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그 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사한다. 그래서 그 사랑하는 사람을 최고 선으로서, 모든 사랑과 모든 빛과 모든 즐거움을 창조해 내는 사람으로 숭배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모든 힘에 대한 감각을 박탈해 버리고 자기를 발견하는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 안에서 자기를 상실하고 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떠한 사람도 결국은 자기를 우상 숭배하듯이 섬기는 사람의 기대에 맞춰살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망을 낳고, 그를 숭배하던 사람은, 치료책으로 새로운 우상을 찾게 되는데, 때로는 이 과정이 끝없이 반복된다. 이러한 우상 숭배적 사랑의 특징은 처음부터 애정의 경험이 강렬하며 급작스럽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상 숭배적 사랑은 가끔 진실하고 위대한 사랑을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강렬함과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지 숭배자의 갈망과 절망을 드러내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우상처럼 여기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며, 때로 극단적인 경우에는 감응 정신병의 양상을 띠기도 한다.

 

- 신경증적 사랑의 또 다른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점과 약점에 관심을 두기 위해 투사적 기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매우 하찮은 결점까지 트집을 잡는 반면 자신의 결점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무시해 버린다. 그들은 항상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개조시키려고 애쓴다. 흔히 있는 일이지만 두 사람 모두 똑같이 그렇게 하게 되면, 애정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형된다.

 

- 사랑은 오직 두 사람이 자기 존재의 중심으로부터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때만, 즉 그들 각자가 자기 존재의 중심에서 자신을 경험할 때만 가능하다.

 

- 그들이 속해 있는 깊은 수준의 내면적 실재에서 경험되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파괴적이지 않다. 이러한 갈등은 오히려 서로의 노력을 통해 명백해지며, 감정의 정화를 가져오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더 많은 지식과 힘을 얻게 된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것을 다시 강조하게 한다.

 

- 사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관계의 깊이, 관련된 두 사람 각 자의 생기와 힘이다. 이것은 사랑을 인식하게 하는 열매이다.

 

- 정신 집중을 익히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책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혹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 없이 혼자 있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정말로 정신 집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귀중한 조건이 된다. 만일 내가 혼자 내 발로 설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는 생명의 구원자는 되겠지만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는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 이 때 몇 가지 간단한 연습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는다든가 또는 단지 호흡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흡을 느낄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내 힘의 중심, 내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자기를 인식하려는 것 등은 도움이 될 것이다. 최소한 매일 아침 잠자리 들기 전 20분 정도씩은 정신 집중 연습을 해야 한다.

 

- 정신 집중을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 즉 여기에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동안 다음에 무슨 일을 할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는 지루함이라든가 좌절감 등을 의식하며 그것에 기분을 내맡기고 항상 있을 수 있는 우울한 생각에 사로잡히는 대신 무슨 일이지?”, “내가 왜 이렇게 우울하지?”라고 자문할 수 있다.

 

- 왜 화가 나고 우울하며 조바심을 내는지 말해 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앞에서 말한 것에 따르면, 사랑의 성취를 위한 중요한 조건은 자아 도취의 극복이다. 자아 도취적 방향은 오직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것만을 현실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외부 세계의 현상은 현실성을 갖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익한가 혹은 위험한가 하는 관점에 따라 경험하게 된다.

 

- 사랑의 기술의 실천이라는 논의와 관련지어 볼 때 그 말은, 사랑은 자아 도취의 상대적 부재에 의존하고 있으며, 겸손과 객관성 그리고 이성의 발달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자아 도취에서, 어머니와 혈연 집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것은 세계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산적인 방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성장하는가에 달려 있다.

 

- 사랑받고 사랑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것도 궁극적 관심으로서 자기를 판다하고 이러한 가치에 따라 도약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그런 용기가 필요하다.

 

-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며, 우리의 사랑이 상대방에게서도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에 자신을 완전히 내던지는 것이다. 사랑은 신념의 행위이며 누구든 신념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도 없다.


― 에리히프롬 『사랑의 기술』, 황문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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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28. 12:56

길을 떠나야할 때는 언제인가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 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읜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지니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졸시,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한겨레 휴심정>, 고진하님 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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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2. 2. 12:23

맨몸

사람들은 돌아나 총칼이 최대의 무기인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가진 것이 없었다 이 말이야.
그것이 최대의 무기였지요.
없으니까 탈도 없었고.
운동은 간디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하는 것이 좋아요.
맨몸이 가장 좋다 이 말이야.
구호조차 외치지 않는 게 좋아요.
구호 또한 뭔가 가진 것이 아닌가?
누군가에게는 구호 또한 폭력이 될 수 있지.
완전한 비폭력으로 가야 해요.

-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2016. 11. 22. 00:48

작은 촛불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
우리의, 아니 적어도 나의 바람은
촛불이 꺼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이 촛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기에
이 촛불을 영원히 잊지 않길 바라지만
그보다 더욱 바라는 것은 
이 촛불이 빨리 꺼지는 것이고
다시는 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는
어쩌면 국가와 국민이 아닌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서 서로 안아주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촛불을 들어야만 한다면
그 때에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백만도 사천구백만도 아닌
나의 바람을 가득 담은 단 하나의 촛불로서
단 한사람의 발만이라도 비춰 줄 수 있기를
우리 모두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에서
작은 촛불 하나로 단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진정으로 바라봅니다


- 페이스북에 담긴 '박선미'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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